0. Intro
"All the world's a stage, And all the men and women merely players; They have their exits and their entrances; And one man in his time plays many parts, His acts being seven ages."
— William Shakespeare, As You Like It (뜻대로 하세요)
"온 세상은 무대요, 모든 인간은 단지 배우일 뿐이라. 그들은 퇴장하기도 하고 등장하기도 하며, 사람은 살아가면서 다양한 역할을 맡으니, 그의 연극은 7단계로 나뉜다."
셰익스피어 연극에 등장하는 이 유명한 독백은 인간의 삶을 7단계의 역할극으로 정의한다. 사실 나이에 따라 인간의 발달 단계를 관찰하고, 거기에 맞춰 삶을 서술하는 방식은 셰익스피어가 처음이 아니다. 멀리 고대 그리스 시절부터 이어져 온 유서 깊은 서사적 장치다.
인간은 수를 탐구하는 만큼이나 수에 신비주의를 투영하길 좋아했다. 피타고라스학파라던가, 이스라엘의 수비학이라던가. 자연계의 기하학적 법칙을 발견할 때마다, 그 숫자와 인간사의 법칙을 어떻게든 끼워 맞춰 설명하려 애썼다. 특히 만물의 근원을 수로 보았던 고대 그리스의 피타고라스 학파에게 '7'은 특별했다. 1과 자기 자신으로밖에 나누어지지 않는 외로운 소수(Prime Number)이자, 영혼을 뜻하는 3과 육체를 뜻하는 4의 결합으로서 '완전함'을 상징했으니까. 문학사에서 인간의 생애 주기를 굳이 7년 주기설이나 7단계 단계론에 집착해 끼워 맞추려 했던 것도 이러한 수비학적 전통과 무관하지 않다.
이러한 수비학과 연극적 비유들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결국 '인간이 수행하는 역할'에 대한 이야기로 귀결된다. 고전 비극에서 거대한 플롯(Plot)이라는 시스템이 정해둔 구조가 먼저일까, 그 안을 채우는 인물(Character)이라는 객체가 먼저일까. 사람이 주어지는 배역을 그저 따라가는 것인지, 아니면 인간이 스스로 그 역할을 만들어가는 것인지는 고대 그리스 비극 시대부터 이어진 오랜 논쟁이다.
1. 학교 수업: 데이터베이스 시스템 (데베시)
거창한 역할론은 잠시 접어두고, 일단 이번 막에서 내가 맡은 배역들부터 점검해 보자.
아침 강의라는 건 본질적으로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강의를 한참 열심히 듣던 도중, 야속하게도 중간에 수면질환이 예고 없이 터져버렸다. 정신을 차려보니 이미 상황은 종료되어 있었고, 야심 차게 준비하려던 과제는 구경도 못 한 채 날아갔다.
결국 출석대체시험이라는 정면 돌파로 노선을 전환했다. 과제로 편하게 점수를 챙기려던 안일함은 압수당했고, 이제는 순수한 텍스트와 쿼리문으로 증명해야 하는 서바이벌이 되었다. 시험 범위가 넓어지겠지만, 뭐 어쩌겠는가. 오히려 데이터베이스의 깊은 곳까지 강제로 다이빙할 기회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2. 자격증: 정보처리기사
슬슬 정처기 책의 먼지를 털어내고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달력을 보니 6월이면 당장 실기 접수다. 지난번 가채점을 하며 '실수만 안 했어도...' 하고 복기했던 기억들이 남아있다. 1학기 수업 들었던 것들이 조금씩 구멍을 메워주는 느낌이 있긴 하다. 다시 잘 준비해 봐야지 뭐.
3. 토이 프로젝트: 최소한의 비용으로 일단 운영중
일단 서비스가 돌아는 가고 있고, 생각보다 주변에서 평이 좋아서 당장은 이대로 굴려도 되겠다는 생각도 좀 든다.
간안에 봤던 학교 선배에게 공유해줬더니 '안그래도 집에서 주식 때문에 고통받고 있었는데 이걸로 한시름 덜었다' 라며 치킨 교환권을 쏘더라. 잘 만든 프로젝트는 역시 돈이 되는구나...?
그로스톡 발표 전에 안티그라비티 테스트해본다고 프론트를 한번 엎어봤었는데, 결과가 생각보다 나쁘지 않다.
가드레일이나 기존의 md파일을 무시하고 구현부터 무작정 하던 게 좀 문제였는데, 2.0 나오고 또 뭔가 바뀌었다니 어디 얼마나 바뀌었는지 다시 또 깔아서 해봐야겠다.
남은 건 서버 구축에 머신러닝까지 돌리는 건데, 이건 설계까진 해뒀다. 당장 내가 뭘 처리하기엔 지금 시간이 촉박해서 두고 있을 수 밖에 없는 느낌이긴 하지만.
4. 구글 스터디 잼: 일정이 폭주하는 달
5월은 정말 일정이 폭주하는 달이다. 최소한의 리액션으로만 참여하고 있지만, 그래도 핸즈온 워크샵을 틈틈이 챙겨보며 GCP를 이해하고 있다.
최근 워크샵에서 Stitch에 Cloud Run을 연계하는 아키텍처를 보았는데, 구글의 속내가 투명하게 들여다보이는 듯했다. '자사 생태계 안에서 간단한 서버리스 인프라를 구축하고, 거기에 프론트를 얹어서 웹앱을 뚝딱 만들게 하겠다'는 그림. IO2026을 보면서도 그런 느낌이 좀 들었었는데, 직접 써보니 확실히 느껴졌다. 아직 핸즈온 세션이 2개가 더 남아있는데, 첫번째가 가장 쉬운 무언가였던 느낌이라 나머지도 기대가 된다.
5. Code in Place: 영어로 코딩을 배운다는 것
스탠퍼드에서 주관하는 파이썬 코스, Code in Place는 여러모로 신선한 자극을 준다. 영어로 지식을 주입받는 것은 여러모로 한국에서 코딩을 배우는 것과는 관점이 또 달라서 새롭기 때문이다.
특히 for문과 while문을 설명하는 방식이 꽤 이채로웠다. 한국의 주입식 교육에서는 대개 조건문이나 반복문이라며 다소 딱딱하게 가르치곤 한다. 그런데 여기서는 루프를 아주 직관적으로 Countable(셀 수 있는가) 하냐, 혹은 Uncountable(셀 수 없는가) 하냐로 뚝 잘라 구분 짓더라. 혹은 영어 한 문장을 딱 놓고 여기에 for나 while loop, and나 or 조건을 설명한다.
한국에서 가르치는 거 만큼 복잡한 논리를 배울 필요가 없다는 느낌이랄까.
이학, 공학은 흔히 언어를 대체할 수 있는 말이고, '우리는 수식으로 대화한다' 같은 이야기나 생각을 꽤나 하지만, 만들어진 배경이나 가르치는 걸 보면 언어의 역할을 마냥 무시할 수는 없는 느낌이라 재미있게 배우고 있다.
현재 5/8 지점까지 왔다. 총 6주차까지 수업이 진행되니, 6주차 이후에는 개인 프로젝트를 만들어 제출해야 한다. 파이썬의 기초적인 룰 안에서 뭘 만들지 고민중이다.
6. 그로스로그 (Growth Log) 개발 세미나 발표: 기획의 중심 잡기
최근 그로스로그 개발세미나에서 발표를 진행했다. 그동안 프론트를 빌드하고, 서버리스 아키텍처를 붙여가며 맨땅에 헤딩했던 이야기들을 정리해 공유하는 자리였다. 조만간 교내 경진대회를 대비한 팀 빌딩도 있을 예정이라, 이번에는 개발 테크닉보다는 '기획' 부분에 조금 더 포커스를 맞췄다. 난 지금 현업 개발자가 아니기도 하고, 현업 분들이 아무래도 그런 건 더 잘 알테니까.
포커싱을 맞춘 게 애초에 '개발을 하려 하고 있거나, 막 시작한 분들'이라는 건 발표자였던 나 자체가 현업에서 일하던 사람은 아니었고, 만든 것도 대단히 엄청나신 무언가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요즘은 ai가 좋아서, ai랑 돌려보며 기획을 다듬다보면 - ai와 함께 내 기획서를 계속해서 재귀 돌리며 이터레이션 하다보면 - 꽤나 그럴싸한 것을 만들 수 있다. 하지만 그 화려한 이터레이션의 홍수 속에서 개발자가 중심을 잡는 방법은 결국 하나밖에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내가 만들고 싶은 것을 단 한 문장으로 정의하고, 끝까지 그 문장을 유지하는 것.
AI와 프롬프팅으로 대화를 나누다 보면, AI가 제안하는 화려한 기능에 휘둘려 내가 처음에 뭘 만들려고 했는지 본질을 잃어버리기 십상이다. 중심축으로 되돌아오는 복원력이야말로 지금 시대의 개발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이 아닐까.
'어떻게 개발을 끝마쳤어요?' 라는 질문을 나중에 들었을 때는 '아, 그럴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기초도 모르던 나도 리액트 처음 배울 때 되게 힘들었던 기억이 났었다. 그 때는 JPA까지 같이 커리큘럼에 담겨서 정말 호되게 고생했었더랬다. 이거 아직 개발 끝난 게 아닌데
7. 인턴 합격과 사전 교육
새로운 기회가 찾아왔고, 사전 교육을 이수했다. 교육 내용 중 '국가과학기술기본계획'이라는 문서를 살펴볼 기회가 있었는데, 이게 생각보다 재미있었다.
우리가 흔히 구직 사이트에서 보는 수많은 공고와 예산들이, 결국은 이 거대한 문서 한 장에서 파생되어 사방으로 쪼개져 내려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정책의 큰 흐름과 설계도를 읽는 법을 배우고 나니, 단순히 과학 정책이나 연구 분야를 넘어 세상을 보는 시야가 한 뼘 더 넓어진 기분이다. 개발자도 방구석 코드만 볼 게 아니라 이런 거대한 흐름을 봐두면 확실히 뼈와 살이 될 거 같았다.
8. Google IO2026. AWS Summit Seoul
IO2026은 새벽에 인터넷으로 봤고, AWS summit seoul은 직접 현장에 찾아가봤다.
아무래도 회사 사람들이 가서 새 기술은 뭔지, 새 기술들은 뭔지 보는 느낌이었어서, 규모도 생각보다 컸고, 생각보다 행사도 돈을 많이 들인 티가 났다.
io2026에서는 구글이 앞으로 어떻게 나아갈지에 대한 방향이 엿보였고, AWS summit에서는 현재 산업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볼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구글은 stitch라던가, gemini omni등에서도 보이듯, 클로드에서 보이던 'AI 프롬프트 창에서 바로 웹을 만들어 가시화 한다'라는 것을 벤치마크 하고,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우리가 클로드가 쥐고 있던 프론트엔드 작성 툴을 탈환한다'라는 의지가 보였다. geimi3.1은 분명 실패에 가까웠지만 - 그나마 실패에서 조금 더 끌어올려서 수성까지 어찌어찌 한 걸 보면 마냥 실패는 아닌가...? - 안티그라비티에 올인한 이유가 있었구나... 싶어졌다.
안티그라비티가 사실상 구글 AI의 한 축이 되었다.
솔직히 AWS만 빼놓고 보자면 이게 AWS summit인지 AI summit인지 모를 정도로 AI 천지이기도 했지만, 덕분에 AI를 정말 여기저기 다 넣어보려고 하는구나... 같은 감상도 있었다.
올해에 눈에 띄었던 건 슬슬 AI를 보안에 넣는 제품들이 눈에 확 띄었다는 점이었던 것 같다.
다만, 바깥의 AI가 제품을 공격하는 양상인데,방어쪽의 AI가 어떻게 얼마나 예상하고 탐지해낼지가 흥미로웠다.
나도 지금 보안 에이전트 따로 만들어서 테스트하고 굴리고 있었어서, 이 부분이 꽤 이채로웠다.
9. 다시 1레벨부터
인턴으로 발령 날 연구원이 확정되었다. 대전에 있던 연구원이다. 감사하게도 내 전공과 잘 매칭되는 업무를 배정받은 것 같아 다행이라는 생각 반, 다시 적응하려면 또 고생 좀 하겠구나가 반. 현재 서 있는 곳에서 하던 일들을 하나씩 줄여나가며 이삿짐을 싸는 게 감정적으로 그리 쉽지만은 않기 때문이다. 어느 연구소인지도 몰라서 어떻게 될지도 아직 모르기도 하다. 가보면 알겠지... 같은 느낌.
과거에 이런저런 프로젝트를 리딩하기도 했고, 직책을 맡아보기도 했지만, 이제 대전에서는 다시 고개를 숙이고 배움을 청하는 '인턴'의 위치로 돌아간다. 몸가짐을 가다듬지 않으면... 하며 스스로 경계선을 긋는 중이다. 자만하지 말고, 조심스럽게, 그러나 단단하게 스텝을 밟아야지.
10. Outro
이번 일지의 시작점이었던 숫자 '7'로 다시 돌아와 본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7을 더 이상 쪼개지지도 결합하지도 않는 고결한 '완전수'이자 행운의 숫자로 여겼고, 셰익스피어는 그 7이라는 숫자에 인간의 인생 단계를 박제하듯 고정된 배역으로 끼워 맞췄다.
하지만 도서관에 잠들어있는 고전 문학과 달리, 실제 삶이라는 텍스트는 그렇게 타임라인대로 고분고분 흘러가지 않는다. 요즈음 시대에 과거의 나이 기준을 잣대로 들이밀며 "몇 세에는 무조건 어떤 배역을 맡아야 한다"고 고집한다면, 아마 현대의 삶은 부조리극이 되었을 것이다. 고전의 대본 어디에도 오늘날 우리가 마주하는 복잡한 시스템과 변칙적인 동선은 적혀있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중요한 건 시스템이 내어준 고정된 배역에 나를 끼워 맞추는 정형화된 연기가 아니다. 그로스로그 발표에서 다루었던 이야기처럼, '작품의 본질을 단 한 문장으로 정의하고, 주변의 화려한 변주와 이터레이션 속에서도 중심 서사를 잃지 않는 복원력'이 핵심이다. 무대 위에 들이닥치는 텍스트가 아무리 방대할지라도, 그것을 어떻게 해석하고 소화해낼지는 온전히 배우의 몫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필드에서의 생활이 곧 시작된다.
어떤 즐거움과 경이가 나를 기다릴까? 그리고 거기서 내 배역은 또 어떻게 달라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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